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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2023.07.15.여름 휴가로 아내와 함께 고택 민박집에 들렀다. 읍내 유명한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예약한 민박집을 향할 때부터 장맛비는 폭우로 변해있었다. 아주 점잖아 보이는 주인장은 단아한 찻상에 녹차와 한과를 건네주며 편안한 밤 되시라 하고 들어갔다. 먼 여행길 운전하느라 금방 잠이 들었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배 속이 편치 않아 잠을 깼다. 밖엔 여전히 폭우로 요란한데 아내는 깊이 잠들었고 화장실은 안채를 거쳐야 하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참다못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속옷 바람으로 바깥 마당에 차 세워둔 곳으로 갔다. 두 손은 목발 짚느라 우산을 쓸 수 없으니 한 순간 온 몸은 폭우를 뒤집어 썼다. 그 형편으로 밖에선 일을 볼 수는 없고 차 안에서 볼 생각에 트렁크를 열어보니 신문지가..

똥에게 갈채를 2025.05.15

곡우 편지

예수님이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춘분이 아닌 곡우에 부활하셨을 거라 우기곤 합니다. 춘분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거든요. 올해는 곡우비가 일주일 일찍 내렸어요. 음력으로 보름이었지요. 보름엔 비 잘 안오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찌뿌리다 오후가 되자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농장에 오기로 한 손님들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비를 흠뻑 맞았지만 그게 곡우비라는 걸 밤이 되어서야 알았네요. 봄비 잘못 맞으면 감기 걸리기 십상인데 그 비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온화한 기운을 담고 있는 비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에 산을 보니 일제히 나무들에 새순이 돋은 겁니다. 그 기운이 얼마나 신선하고 상큼한지 꽃이 아무리 예쁜들 새순만 할까 했습니다. 화려한 꽃이라 해도 이내 지고 말 운명이지만 새순은 앞날이 창..

절기 편지 2025.05.05

[흙으로 돌아가는 삶1] 거름 이야기 2025. 3. 17.

흙으로 돌아가는 삶은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도 가능한 일임을 제가 존경하는 귀농 선배 한 분에게서 배웠습니다. 그 분은 귀농해서 아주 소박하고 예쁜 뒷간을 직접 만들어 놓고는 정작 자신은 볼 일을 뒷간에서 보지 않고 밭에 들어가 봤답니다. 한 손엔 호미, 다른 손엔 물 한 바가지 들고 적당한 자리 찾아 호미로 구멍 판 다음 일 보고 물 한 바가지로 비데 하면 끝. 그게 매일 흙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라니 재밌죠. 똥은 나의 분신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나의 분신이 매일 흙으로 돌아간다면 그 흙 또한 나의 분신이지 않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이 그 흙으로 나를 빚었으니 내가 거꾸로 흙의 분신이기도 하겠죠. 다르게 말씀드리자면 하느님이 흙으로 빚은 다음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완성했으니 나는 하느님과 흙의 합작..

흙 내음 편지 2025.03.23

오지랖 이집트 사람들 _그리 오래지 않은 미래

저는 세상에 제일 인사성 밝은 이들은 아일랜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길 가다 마주치면 누구라도 반갑게 인사를 하지요. 와~근데 제가 한달동안 만난 이집트 사람들은 인사성을 넘어 오지랖이 장난이 아닙디다. 상상 초월이에요.가장 황당한 예는 길 가던 차가 도로 한복판에서 차를 세워놓고 처음 보는 저에게 인사를 하는 겁니다. 한번은 퀴나라는 소도시의 한적한 길을 휠체어 타고 가는데 길건너 뒤에서 오는 차가 도로 한가운데 서더니 "웨아 유 프롬?" 하고 소리를 치는 거에요. 제가 가는 길도 아니고 건너편 길에서 그러니 처음엔 못 알아들었죠. 누가 뭐라 그러나 하고 고개 돌려 쳐다보니 이번엔 약간 짜증난 표정을 지으며 더 큰 소리로 물어보네요. 대답 안 하면 차를 길에 그냥 둔 채 뛰어나와 따질 기셉디다. 큰 ..

기타 글창고 2025.03.19

마늘의 원산지 나라

저로선 적지 않은 나라를 다녀보며 제일 힘들었던 거는 익숙지 않은 냄새였어요. 향신료 들어간 음식 냄새서부터 건물 안에서 오래 쌓여 나는 알 수 없는 냄새, 그리고 제일 힘든 건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였을 겁니다. 향수 냄새도 싫지만 땀내와 함께 몸에 벤 특유의 지역먹거리 냄새까지, 휴~. 어? 근데 제일 냄새 많을 거 같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아무 냄새가 안 나대요. 렌트카 못 구해 이번처럼 택시로 이동할 경우 사진 찍기 좋은 조수석에 앉으면 기사 냄새권이라 낭패일 수 있는데 말이죠. 참 신기했어요. 이 사람들 행색이 명절 때나 목욕 가듯, 그것도 겨우 물로만 샤워하는 나보다 더 컨추리하거든요. 왜 그럴까, 아주 궁금했는데 오늘 소하그라는 중부지방 소도시 와서 조금은 알 것 같더만요. 바로 마늘이었습니..

포루투갈 논농사 책

오비두스라는 고성에 밤 다 되서 도착했습니다. 언덕이 많은 곳이라 아침에 집사람 먼저 휠체어 길 탐사차 나갔습니다.예쁜 고성답게 예쁜 기념가게만 즐비한데, 씨앗 모종 등이 있는 책방이 눈에 띄어 들어갔답니다.중고책까지 천정이 닿도록 쌓여 있는 책들을 보고 있자니 책방 주인이 와서 무슨 책 찾느냐, 어디에서 왔냐 등 물어보며 자기네 책방자랑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이 원트 어바웃 포르투갈 트래디셔널 아그리컬쳐 북"하고 물으니 두권을 가져왔답니다. 그 중 한 책 표지에 밀짚모자 쓴 사람들이 모내기하는 장면이 있기에 베트남 농사책인줄 알고 다시한번 포르투갈? 했더니 맞다고 하더라네요. 작은 책방임에도 영어 스페인 이탈리아 책 하다못해 일본책까지 있어 베트남에 대한 논농사 책인가 했답니다. 그래도 저한테 ..

카테고리 없음 2025.03.13

전통농업연구소 소개

주소: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옹기마을길, 등록번호:577-39-00024대표:안철환(대표자 프로필 별첨)전통농업연구소는 토종 종자의 보존과 전통농업의 정신 및 기술들을 복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토종 종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밥상과 논경지에는 불임 외래종자들이 자리잡은지 이미 오래입니다. 또한 기계와 화학물질들에 의존하고 외부에서 많은 에너지와 자재를 끌어들이는 고투입 농사가 우리 농경지를 지배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이에 전통농업연구소는 토종 종자를 보존하여 종자주권과 농부권을 부활하고 순환적인 방법으로 저투입 농사를 복원, 보급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그를 위한 방법으로 토종 작물 육묘 보급, 무동력자연순환 퇴비통 및 생태뒷간 보급, 윤작 혼작에 입각한 전통농업 순환농장 보급에 주력하고 있..

林園經濟志 (서유구 지음)

2017년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나던 날부터 고농서 공부모임을 시작하고 벌써 2년이 지났다. 첫 시작 공부는 세계 최초의 농업서적으로서 기원전 1세기에 범승지라는 사람이 쓴 중국의 범승지서氾勝之書였다. 그리고 바로 조선 최초의 농서로서 세종대왕이 국책으로 발행한 농사직설(1429, 정초)을 거쳐, 세조 때 정승을 지내다 은퇴 후 고향인 금양(지금의 경기도 시흥)으로 내려와 강희맹이 쓴 금양잡록(衿陽雜錄)을 읽고, 절기별로 농사 일정을 정리한 농가월령(1590, 고상안) 강독 후 지금은 풍석 서유구 선생이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1842)의 첫 번째인 본리지의 토양편을 읽고 있다.16개 분야로 쓰여있어 임원십육지라고도 하는 임원경제지는 총 113권 5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백과..

고古농서 2025.03.06

똥, 세상에 인사하다

농식품부 aT공사(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2019년 로컬푸드 기반 사회적모델 지원 사업’에 퇴비관리사 양성을 주제로 선정된 적이 있었습니다. 먹거리 사업에 거름 얘기는 좀 도발적이었죠. 올해도 연속사업이 떴기에 이번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음식물거름만들기 주제로 신청했더니 또 선정되었지 뭡니까? 거름 얘길 연속해서 받아 줄지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내 손으로 거름 만들기 운동을 20년 가까이 해 오는 동안 이렇게 중앙부처인 농식품부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제겐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더 황당한 일은 사업결과 공유회 때 거름 얘기가 우수사례로 뽑혀 발표까지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솔직히 난감한 마음 없지 않았어요.이왕 하는 거 잘 하고 싶었습니다. 평소와 달리 정성껏 발표 자료를 만들고 두 번이나 ..

똥에게 갈채를 2025.03.06

뒷간 AS 똥 친 이야기

올 봄 경기도 원당 농협대학 부지에 조성한 경기도시농업공영농장에 뒷간을 납품한 적이 있었습니다. 목공도 하고 농사도 잘 짓는 강동의 남시정 대표님이 외관을 제작해 주고 내부 장치들은 제가 제작해 설치했지요. 겨울이 되어 농장도 문 닫고 뒷간엔 똥오줌이 차니 치워달라는 AS 부탁이 왔습니다. 대개는 농장 운영측에서 치는데 인분퇴비를 쓸 사람도 없고 전담 관리담당이 따로 없이 행정하는 분들이 관리하다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그런데 도와주기로 했던 분이 별안간 다쳐서 저 혼자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똥 치는 일은 저희 농장이나 제 집에도 뒷간이 있어 늘 하던 일이라 문제는 없으나 그 뒷간은 주차장에서 좀 떨어져 있어 자재나 필요 기구를 들고 갈 자신이 없었죠. 그렇다고 갑자기 똥 치는 일을 부..

똥에게 갈채를 202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