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의 자세
이집트 박물관마다 볼 수 있는 쪼그려 앉은 조각상이 참 궁금했습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의 귀족들이나 엘리트 계층이었던 필경사들 무덤의 비석이었다네요. 당시 왕이었던 파라오 무덤의 입상 비석처럼 크게 세울 수 없던 처지라 좌상 조각으로 비석을 만든 모양이었습니다. 처음 생각엔 조각하기 힘들어 저렇게 표현 했나 싶었지요. 실제로 고대 이집트의 조각기술은 입체 조각기술을 완성 못 해 부조와 입체 조각 중간 쯤의 조각상을 만들었습니다. 쪼그려 앉은 좌상도 엉덩이와 다리 부분을 구분없이 거의 박스처럼 표현한 것도 있어 잘 못 보면 마치 엉덩이와 하체 전부가 박스에 빠진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겠더라구요.
그런데 조각기술의 수준도 영향이 있겠으나 그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한 농촌 마을을 지나는데 마치 그 조각상 모습으로 밭둑에 앉아 일하는 농부를 봤어요. 그러고 보니 도시 길가에서도 할 일없이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본 기억이 떠오릅디다. 그래서 상상해봤지요. 저건 분명 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자세일거라고 말이죠. 저에겐 농사 스승이나 다름 없던 저희 동네 농부 아저씨도 늘 쪼그려 자세로 일을 하셨어요. 엉덩이 의자라도 앉으세요 하면 당신은 이게 편하다 하셨죠. 근데 생각해보니 아저씨는 마른 체형이어서 쪼그려 앉아도 무릅에 부담이 안 가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체구 큰 사람이 많은데 쪼그려 앉으면 무릅에 부담이 가지 않을까요?
추운 지방엔 뚱뚱한 사람이 많고 더운 지방엔 마른 사람이 많다는 제 가설이 이집트에 와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저런 무거운 몸으로 더운 날씨를 어떻게 버틸까요? 여행 내내 이 문제가 머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 사람들, 제가 계단이라도 만나면 어디서든 나타나 휠체어를 번쩍번쩍 들어올려 주는 걸 보고 날이 맑고 따뜻해 관절이 튼튼해서 힘을 잘 쓰는 것 같다는 집사람 말에 전광석화처럼 머리가 확 깨대요, ㅎ.
맞습니다. 여긴 습하지 않고 건조한 더위라 그늘만 드리우면 그렇게 덥지 않죠. 몬순지역의 무더운 나라는 더위가 습으로 몸속을 파고드니 더위를 피할 데가 없잖아요. 천상 몸을 가볍게 해서 되도록 습의 침투를 적게 하는 수밖에요.
그러고 보니 여러문제가 실타래 풀어지듯 풀리네요. 우린 노인들이 날이 습해 곧 비가 올 것 같으면 신경통이 도져 마디마디 쑤신다고 빨래 거두라고 하잖아요. 습하면 저기압이라 기압이 낮으면 상대적으로 관절 내 기압이 높아져서 관절이 팽창해 통증이 심해진답니다. 또 날이 습하면 대기 중 많아지는 양이온이 전기적으로 마이너스인 몸 속 혈액에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해 혈액순환을 방해한다네요. 아무래도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면 관절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 염증을 제거할 백혈구 양이 줄어들테니 더 통증이 유발되겠죠.
그래서인가 한달 동안 이 나라의 도시와 시골을 다녀봤지만 꼬부랑 노인을 볼 수가 없었어요. 노인이건 중년이건 대부분 허리 꽂꽂하고 표정도 밝은 거 보면 날씨 영향이 크겠더라구요. 가난해 경제적으론 어려울지 몰라도 농사 잘 되 먹을 거 풍부하고 춥지 않아 땔감 걱정도 없고 집걱정도 덜 할테니 말이죠.
그 다음으로 궁금했던 거는 왜 이곳 고추는 전혀 맵지 않지?, 하는 거였어요. 아삭이 고추만 있는 것 같았지요. 매운 고추는 열을 내니 추운 지역에서나 어울린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더운 지역 사람들이 매운 고추를 즐기거든요. 그래 알아보니 그냥 더운 지역이 아니라 열대지역처럼 무더운 지역에서 매운 고추를 즐기는데 이는 발한 작용이 강해 땀을 빨리 내게 하여 몸을 파고 든 습을 배출하는 데 좋기 때문이란 얘기죠. 함께 몸 속 염증 배출에도 좋을 겁니다. 그래서 단지 더운 지역이 아니라 무더운 지역 사람들이 매운 고추를 즐긴다는 거죠.
다음으로 궁금했던 거는 이 나라는 듣던대로 참 깨끗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곰곰 보니 마찬가지로 이도 날씨와 관련이 깊어 보입디다. 우선 사막이라 먼지가 많아요. 건물들도 쌓인 먼지가 많아 깔끔하지가 않아요. 사람들도 옷에 먼지가 많고 좀 좋다 싶은 차에도, 좀 싸다 싶은 호텔에도 영락없이 먼지가 많으니 어디나 먼지 없는 곳이 없어요. 이는 분명 사막기후 탓으로 보입니다. 반면 북서유럽이나 일본은 깨끗하죠. 이는 분명 비가 자주 오기 때문일거에요. 스크롤성 비가 샤워 틀듯 쏴 하고 왔다가 금방 해가 나니 자연이 청소를 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날이 습해 바이러스나 곰팡이 피해가 많을테니 위생관념이 발달하죠.
반면 이집트는 늘 날이 건조하여 깨끗하지 않아도 바이러스나 곰팡이가 좋아할 환경이 아니어서 위생관념이 발달하지 않았겠구나 싶대요. 그래서인지 곳곳에 쓰레기가 굴러다녀도 파리가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구요. 크기도 작아요. 우리처럼 똥파리 왕파리는 전국을 다녀봤지만 못 봤어요. 모기도 있긴 한데 그냥 맞을만해요. 우린 집안에 한마리만 들어와도 잠을 못 자잖아요. 또 의외로 다른 벌레를 못 봤어요. 그 흔한 바퀴벌레를 한달동안 한마리도 못 봤구요, 그리마, 노래기, 지네 같은 징그런 벌레도 전혀 못 봤어요. 요놈들은 사실 습한 걸 좋아하거든요. 남쪽 끝 아부심벨에선 귀뚜라미 소릴 들었답니다. 겨울인데요. 어쨌든 참 반가웠는데 보진 못 했어요.
이집트 귀뚜라미 소리도 예쁘기는 한데 우리의 가을 귀뚜라미 만큼 맑고 청아하진 않았어요. 귀뚜라미는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해 좋은 소리 만들 돌틈을 찾아 운답니다. 일종의 소리통을 찾는 거겠죠. 우리는 잔돌들이 많은 나라라 귀뚜라미가 좋아할 소리통이 많은데다 주로 맑고 건조한 가을에 우니 더 청아한 소리를 내지만 이집트엔 돌보다는 흙먼지가 많아 건조하더라도 소리가 우리만큼 우렁차진 않은 것 같더라구요. 소리통이 부족한 거죠.
암튼 몇년째 퇴행성 관절염과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픈 저도 건조한 나라에 한달이나 있다보니 통증이 없는 걸 이 글 쓰며 알았네요. 아마 일을 안해서 그럴 것이라 추측은 하지만 환경이 바뀐 영향도 무시 못하겠죠?
먼지 많고 청결하지 않다고 함부로 남의 나라를 폄하해선 안되겠지만, 그래도 비닐, 패트병 등 많은 쓰레기가 뒷골목, 하천주변에 굴러다니는 건 보기가 좋지는 않더라구요. 관광지가 더 해요. 소도시가 훨씬 깨끗한 편이죠. 아마도 관광지는 외국인만이 아니라 타지역에서 유입된 외지인들이 많다보니 지역공동체 문화가 덜 해서 그러지 않은가 싶대요. 청소부가 있긴 한데 인력이 모자라서인지 대로 위주로 치더라구요. 외지인이 적은 소도시는 아무래도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입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