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돌아가는 삶 - 거름이야기와 마무리
거름 만드는 일은 밥 먹는 일만큼 쉬운 일이란 걸 꼭 일러주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유기물이란 그냥 놔두어도 다 썩게 되어 있어요. 냉장고에서도 썩어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발효제 없어도 큰 지장 없습니다. 있으면 더 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김치, 장 담글 때 발효제 넣지 않잖아요.
다만 발효와 부패의 차이점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것은 같아요. 최종 결과물이 인간에게 해로운 결과가 생기면 부패, 이로운 결과가 생기면 발효라고도 하거나, 좀더 넓게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발효, 그렇지 않으면 부패라 할 수 있어서 둘의 차이는 종이 한장 정도라 할 수 있지요. 가령 술을 만들려고 했는데 잘못되어 식초가 생겼으면 부패로 간주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발효라 할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력을 높여주는 호기발효
거름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크게 호기발효와 혐기발효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호기(好氣)발효는 글자 그대로 공기를 좋아하는 발효로 산소발효라 할 수 있고요, 혐기(嫌氣)발효는 반대로 공기를 싫어하는 발효로 무산소 발효라 하지요. 대체로 김치나 장 같은 음식의 경우 혐기발효를 시키는 반면 퇴비는 호기발효 시키는 게 좋습니다.
저는 거름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기도 합니다. 하나는 흙이 좋아하는 거름, 하나는 작물이 좋아하는 거름으로 말이죠. 물론 이렇게 이분법으로 딱 잘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흙이 좋아하면 작물도 좋아하죠. 다만 작물이 좋아하는 거름을 흙이 싫어할 수는 있어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흙이 좋아하는 거름을 만드는 일입니다.
음식물찌꺼기가 됐든 똥(인분, 축분)이 됐든 이런 질소질 성분이 주재료인 것으로 거름을 만들 때 꼭 톱밥을 섞습니다. 질소질 성분은 대체로 단백질이 분해될 때 나옵니다. 그러니까 질소질 성분이란 고기 같은 단백질 성분이 많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말합니다. 이런 질소질 재료를 발효시키기 위해 톱밥을 섞는 게 아니라 톱밥을 발효시키기 위해 질소질 재료를 섞는 것이라고 말이죠. 왜 그럴까요?
하나는 질소질 재료와 톱밥을 섞어 발효시키면 최종 결과물은 발효된 톱밥만 남기 때문입니다. 질소질 재료는 쓰이기만 하고 사라진 거에요.
두 번째는 흙의 지력, 곧 땅심을 좋게 해주는 것은 질소질보다는 톱밥에 많은 탄소질이기 때문입니다. 질소질 성분은 자신의 고향인 하늘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작물이 먹지요. 그리고 남은 건 땅 속으로 스며들거나 유실되어 수질 오염원이 되기도 합니다. 탄소질이 지력을 좋게 해주는 주인공인 것은 탄소질이 바로 유기물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유기물이란 탄소화합물의 또 다른 표현이고, 그래서 지력이 좋다는 것은 토양에 유기물이 충분하다는 말과 같거든요.
그래서 톱밥을 발효시키기 위해 음식물이나 똥을 섞어주는 겁니다. 비율도 톱밥의 탄소질 성분이 20~30이면 질소질 성분은 1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탄소질이란 거지요. 그래서 저는 탄소질 재료를 밥이라고 하면 질소질은 반찬이라고 합니다. 이를 탄소질 대 질소질 비율이라고 해서 탄질비라고도 하고, 영어도 탄소질carbon의 c, 질소질nitrogen의 n을 따 와서 cn율이라고도 하지요.
톱밥을 섞어주면 톱밥 틈의 공기층 때문에 호기발효가 절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톱밥이 밀가루처럼 고운 것보다는 입자가 커서 틈이 많은 거친 게 좋습니다. 톱밥엔 목질부 섬유질인 리그닌이 풍부합니다. 이를 토양 미생물, 그 중에 방선균이란 놈이 아주 좋아합니다. 이놈이 리그닌을 먹고 접착 성분을 만들어 토양의 홑알들을 떼알구조로 뭉쳐 줍니다. 이 떼알구조 흙을 입단(粒團)구조 흙이라 하는데 흙 알갱이(고상)가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이 물(액상)과 공기 층(기상)으로 이루어지고 유기물은 입단화된 흙 틈 벽면에 코팅되어 약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유기물함량이면 꽤 옥토라 할 수 있어요.
탄질비는 이론적으로 20~30:1이 적당하지만 실제 거름을 만들 때는 부피 기준으로 톱밥 1.5~2에 음식물이나 똥은 1이면 적당합니다. 음식물이나 똥에도 탄소질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분도 중요합니다. 60%가 적당한데요 실제론 눈으로 볼 때 톱밥과 섞은 상태가 뽀송뽀송하면서 약간 촉촉한 느낌이면 됩니다. 물기가 눈에 보일 정도면 과습입니다.
톱밥과 잘 섞어놓고 발효가 진전되면 부피가 70% 정도로 줄어들 때가 옵니다. 공기가 모자라 호기상태가 좋지 않다는 신호입니다. 그럴 때 위 아래를 뒤집어 줍니다. 공기를 공급해주는 거지요. 그리고 나서 두 세달이면 발효가 완성되는데 일단 원재료 냄새는 사라지고 약간 습하면서 풋풋한 냄새가 나며 색깔은 거무튀튀해집니다.
기후위기 땅심으로 극복하자

기후위기는 하늘이 화가 난 거에요. 그래서 기후재앙이라고도 하지요. 기후재앙의 완결판은 대가뭄입니다. 다른 말로 한재(旱災)라고 하는데 수재, 화재 등 기후재앙 중에서 제일 무서운 재앙입니다. 다른 재앙들은 피할 곳이 있는데 한재는 피할 데가 없어요. 모두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사망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도 1670(경술년)~71년(신해년)에 대기근이 닥쳐 1천만명의 인구 중 1백만명이 굶어 죽었답니다. 경신대기근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가 들이닥쳐 세계 곳곳에 추위와 함께 엄청난 가뭄으로 대기근이 곳곳에 벌어졌지요.
한재 같은 기후재앙이 지나가면 토양이 크게 망가집니다. 심하면 사막화가 일어나지요. 오늘날 세계 곳곳의 사막지역도 기후재앙의 결과가 많습니다. 이집트 나일강 주변 옥토 넘어 거대한 사막지역도 원래는 초원지대였답니다. 사막국가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도 원래 숲으로 우거진 지역이었다지요. 엄청난 기후위기, 곧 한재가 누차에 걸쳐 들이닥치고 결국 건조한 기후조건이 자리잡으면서 사막지역이 된 것이겠지요. 세계 4대강 문명 지역을 보면 황하를 빼고는 다 사막지역입니다. 사막지역에서 문명의 꽃이 피진 않았을 겁니다. 문명이란 비옥한 지역의 곡창지대가 받침되었기에 가능했을 테니요. 문명 앞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있다는 어느 유명한 학자의 말이 바로 그것을 두고 한 말일 겁니다.
저는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기후재앙으로 사막이 생겼다는 건 분명 땅심이 고갈되었다는 것인데요, 반대로 땅심을 잘 지키면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하는 겁니다. 문명 발달로 숲이 사막이 되었다는 건 분명 땅심을 지키지 못했거나 아니면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 땅심 살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죠.
저는 그럴 위험이 있는 곳을 엄청난 단작지역이라 봅니다. 예를들면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포도, 밀, 옥수수, 콩, 목화, 커피, 사탕수수 지역 등입니다. 숲을 파괴해 조성한 경작지이기에 한 종류 작물만 심으면 나중엔 작물마저 병해충 피해 등으로 사라져 결국 사막이 되고 말겁니다. 이미 강, 하천, 지하수는 오랜 단작으로 고갈되고 말았지요. 그외 겨우 남은 초원 지대마저 양들이 먹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될 겁니다. 제가 가본 유럽, 호주와 뉴질랜드의 단작 지역들에서 저는 그 위험을 직감했습니다. 얘기로만 들은 중국의 드넓은 단작지대, 미국과 남미 등에서 숲을 파괴하고 난개발 되고 있는 단작지대들도 큰 위기들을 축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랄해를 말려버린 소련의 목화 단작 농사가 이미 경고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저는 땅심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땅심만 잘 지키면 사막화도 막을 수 있습니다. 땅심을 살려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면 기후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 믿음을 다음의 짧막한 글로 대신하고자 하옵고, 그동안 어설픈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한 말씀 드립니다.
하늘과 흙과, 그리고 사람
하늘색은 뭘까요? 파란색? 하늘색?
ㅎㅎ, 죄송하지만 하늘은 검은색이에요.
왜 그러죠?
하늘천따지 검을현누르황이라고 하잖아요.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는 말이요.
까만 흑이 아닌 검을 현은 좀 달라요. 그냥 새까만 게 아니고 뭔가 아련히 있는 거에요. 뭐가 있을까요?
맞아요, 별이 있지요.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요? 구름 넘어 저 멀리 있을까요?
하늘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어둠을 보고 알았어요.
토종 씨앗 찾아 강원도 깊은 산골 한 할머니 집에 들렀다 하루를 묵은 적이 있었어요.
저녁 얻어 먹고 TV도 없는 구석방에서 일찍 잠을 청하려고 침침한 백열전구 불을 껐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오대요.
얼마나 어두컴컴한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처음엔 그 어둠이 불안했어요. 조금 무섭기도 했고요.
근데 좀 지나니 편안해지기 시작하대요. 어둠이 이불처럼 느껴졌어요.
한참 지나 알았지요. 그게 나를 감싸준 하늘이란 걸요.
하느님은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죠.
그리고 숨을 훅 불어넣어 생명을 깃들게 했다잖아요.
뿐입니까? 비도 내려주어 생명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지요.
비는 어두운 하늘의 은하수에서 내려온다 했어요. 바로 검은 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죠.
흙과 하늘 사이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맞습니다. 흙과 하늘은 붙어있어요. 아니 붙어있다 못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맞을거에요. 하늘은 흙에 숨을 불어 넣어주고 흙은 생명을 잉태해 하늘을 감동시키죠.
하늘이 노한 기후위기는 하늘이 흙과 멀어져 일어난 거라고 봐요. 흙을 다시 하늘과 소통하도록 제 자리를 잡아주면 기후위기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흙에 생명을 잉태 해주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게 사람이 할 일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