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이집트 사람들 _그리 오래지 않은 미래


저는 세상에 제일 인사성 밝은 이들은 아일랜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길 가다 마주치면 누구라도 반갑게 인사를 하지요. 와~근데 제가 한달동안 만난 이집트 사람들은 인사성을 넘어 오지랖이 장난이 아닙디다. 상상 초월이에요.
가장 황당한 예는 길 가던 차가 도로 한복판에서 차를 세워놓고 처음 보는 저에게 인사를 하는 겁니다. 한번은 퀴나라는 소도시의 한적한 길을 휠체어 타고 가는데 길건너 뒤에서 오는 차가 도로 한가운데 서더니 "웨아 유 프롬?" 하고 소리를 치는 거에요. 제가 가는 길도 아니고 건너편 길에서 그러니 처음엔 못 알아들었죠. 누가 뭐라 그러나 하고 고개 돌려 쳐다보니 이번엔 약간 짜증난 표정을 지으며 더 큰 소리로 물어보네요. 대답 안 하면 차를 길에 그냥 둔 채 뛰어나와 따질 기셉디다. 큰 소리로 사우스 코리아, 했더니 아주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오~코리아!, 웰컴" 하며 엄지척 하고 가더라구요. 참~ 너무 웃기죠?
또 황당한 일이 생긴 것은 이스마일리아라는 수에즈 운하 도시에서 생긴 일입니다. 이집트 차도의 인도는 꽤나 높기도 하고 거의 경사로(슬로우프)가 없어 사람들도 대부분 차길로 걸어다닙니다. 그러니 휠체어로 인도를 다니는 건 엄두내기 어렵지요. 그렇게 차길로 휠체어 타고 가는데 맞은편에서 멋진 오토바이 한대가 오더니 저를 지나치자 마자 제 뒤편에서 서고는 제게 다가와 다짜고짜 악수부터 청하며 하는 말, "웰컴 투 이스마일리아!" 하는 거에요. 아마 제 앞길을 막으면 불편 줄 것을 우려해 뒤에다 세워두고 온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이어서 이스마일리아 어떠냐 기에 베리 나이스 하기 무섭게 웨아 유 프롬 합니다. 사우스 코리아하니 엄지척 하며 그냥 가대요. 참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일까요? 오토바이만큼 멋진 젊은이였는데 말이죠. 해석이 안돼요.
하여간 버스 타고 가던 사람, 택시 타고 가던 사람 마차 타고 가던 사람 길 가던 사람들 저마다 바쁜 사람들일텐데 뭐 그리 궁금한지 손 내밀어 웰컴 투 이집트, 웨아 유 프롬? 합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난데 없이 워츠유어네임 하는 겁니다. 속으로 내 이름 알면 뭐하게? 하고 싶지만 참 답하기가 거시기 하죠. 더구나 아이들은 무조건 워츠유어네임에요, 좀 가난해 보인다 싶으면 원달라 원달라 하고요, 아니면 휴지나 기념품 팔기도 하죠. 근데 좀 사는 집 애들 같다 싶으면 사진찍자고 난리입니다. 코리아라면 비티에스인 줄 아는지 수줍어하고 좋아서 환호들 하죠.
그리고 몸 불편한 장애인이라고 어찌나 도와주려는지 도리어 불편할 때가 많기도 하죠. 힘이 좋아 휠체어 막 들다 자칫 사고라도 날 수 있어 집사람하고 애면글면 한 게 한 두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관광지는 좀 다릅니다. 도움을 부탁도 안하고 부탁 받을 상황도 아닌데 달려와 도와주고는 벅시(팁) 달라 하는 일입니다. 이게 참 난처한 일이죠. 한번은 유럽인으로 보이는 청년이 도와주러 오기에 노생큐 위 캔두잇 하니, 머니 안줘도 돼요 하네요. 이집트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 있었지요.
그렇게 몇번 당하다보니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지는 거에요. 이러면 여행의 질이 확 떨어집니다. 길 가는 게 스트레스죠. 관광지의 호객 행위는 정말 자증납니다.
근데 재밌는 거는 앵벌이든 삐끼든 귀찮게는 하지만 노 노 하면 쿨하게 뒤돌아서는 거에요. 삐진다거나 헤꼬지한다거나 혹여 소매치기로 변신하는 일은 없는 것 같더라구요. 유명 관광지에선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말이 이곳엔 아닌가 보대요. 좀 알아봐야할텐데 추측컨대 이슬람교의 영향이거나 어디나 많은 경찰들의 상엄한 치안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
독재국가라 경찰들 위세가 대단해 인기 있는 직업이랍니다. 어디든 참 많아요. 은행, 박물관, 유적지, 모스크와 교회 그리고 고속도로 곳곳에 바리게이트 치고 검문을 무지 합니다. 대체로 공정해 보이지만 부조리한 면도 보입디다.특히 택시 기사들이 밥인 것 같아요. 쓱 찔러주는 걸 몇번 봤거든요.우리도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그랬지요.
근데 간혹 경찰인지 보안요원인지 하는 사람이 괜한 친절을 베풀며 결국 벅시(팁) 벅시하는 일이에요. 그래 적당히 준비해두었다 필요할 때 건네주면 요긴할 수 있는데 잘 못 주면 자존심 상해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주변에서 보곤 다른 이들이 더 달라붙을 수 있어 조심해야죠.
다음으로 오지랖 넓은 이집트 사랑들의 재밌는 특징으로 제 눈에 들어온 풍경은 잦은 싸움이 의외로 많고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몰려들어 싸움을 말리는 모습입니다. 싸움이 잦은 것도 재밌지만 아무 상관 없는 길 가던 행인들이 참견하는 것도 참 재밌는 풍경이에요. 그러다보니 싸움은 크게 번지지 않고 금방 시시해지고 말대요.
한번은 룩소루 신전 근처 4층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아래를 보니 청소년 아이 둘이 싸우고 있었어요.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친구들과 어른들이 금방 말렸지요. 그런데 말리고 나면 좀 있다 또 달려들어 때리고 하길 두어번 지났을 즈음, 반전이 일어났어요. 일방적으로 맞던 아이가 참다 못해 역공격을 하는데 어디서 그런 힘을 꼬부쳐 놨는지 멋지게 상대를 주어패는 거지 뭡니까. 이젠 끝났겠지 방심하던 주변 사람들이 더 놀라 달려드는 사이에 때리던 애는 자기가 때린 것보다 더 맞은 것 같더라고요. 결국 싸움은 말려졌고 사람들은 두 아이를 멀찍이 떨어뜨려놓고 달래고 있었어요. 두 아이가 화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싸움은 무승부로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맞습니다. 싸울 때는 싸우는 게 좋고 그럴 때는 꼭 말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큰 싸움이 생기지 않으면서 분도 삭이고 그러다보면 화해도 하고 그러죠.옛날엔 그랬잖아요. 싸워야 친해진다고.....근데 그런 작은 싸움도 없고 말리는 사람도 없으면 분이 쌓여 결국 폭발해 큰 일이 납니다. 천륜, 인륜에 역행하는 흉악범죄가 일어날 수 있죠. 얼마 전 교사가 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일이나 극우 집회 가면 볼 수 있는 살기 도는 눈빛들도 분을 삭이지 못한 원들 같아 걱정이 많습니다.
10여년 전 산재장애인, 도박중독인들 대상으로 농부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었어요. 개강 때 본 그분들의 어두운 표정과 눈빛들이 수료식 때 완전 달라진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기억이 선합니다. 빌딩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다친 장애인 한 분이 그랬어요. 별안간 장애가 된 현실이 얼마나 억울한 지 길가다 아무나 칼로 마구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고요. 그런 분이 흙냄새 풀냄새 맡으며 풀어지는 느낌을 받은 거에요. 근데 저는 다시 걱정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농사가 주는 그런 치유효과를 그 사람이 얼마나 지속할 수 있겠어요. 농업농촌의 어려운 현실이 또 다른 분을 품게 만들지 모르는데 말이죠.
암튼 작은 산불이 큰 산불을 막는다고 우리도 작은 갈등과 스트레스를 너무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느새 우리 주변엔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만 게 더 씁쓸합니다. 오지랖 이집트 모습이 우리에게도 그리 먼 옛날 얘기가 아니었는데 말이죠.